3일차(초록색)
3일차. 어제의 피로떄문인지 잠이 늦게 깨졌다. 알람을 6시에 맞추어 놓았는데 6시 30분쯤 일어난 것 같다. 창밖을 보니 아뿔사. 비가온다. 부랴부랴 준비하여 어제 호텔 주인이 챙겨준 아침을 간단히 먹고 하니 벌써 7시 20분이다. 특히 판쵸우의를 오랜만에 입는 것이라 입는데 시간이 좀 소요되었다.(군대의 판쵸우의와 비슷..) 호텔에서 출발을 하려는데 도저히 발이 안떨어진다. 진짜 제발 하루만 이 호텔에서 하루만 더 푹 쉬고싶다. 어제의 긴 코스에서 온 피로도 부담이었지만, 진짜 이 빗길을 걷고싶지 않았다. 카메라가 상할까봐 제대로 사진은 많이 못찍었으나, 비가 부슬비가 아닌 진짜 덩이가 굵은 비였다. 도시에서 이런 비가 내렸으면 콜라사러 슈펴가기도 실을정도의 비.. 하지만 코스가 밀리기 사작하면 끝도 없이 일정이 밀리기 때문에 끝까지 거부하던 내 몸을 이끌고 걷기 시작했다. 이날은 사진을 찍은것이 많이 없는데, 처음 출발할때 기념사진, 중간에 약 20분간 비가 안올때 기념사진, 그리고 산장에 도착해서 씻고나서 찍은 사진, 이렇게 세번밖에 못찍었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비가 떨어지니 카메라를 꺼낼수가 없었고, 특히나 비가 오기 때문에 뒤집어썼던 판쵸우의 내부에서 카메라를 꺼냈다가 집어넣는 일이 쉽지 않았다.
출발하기 전 완전무장 한 모습
비오는 Courmayeur
Courmayeur(1223m) – Refuge Bertone(1996m)
처음 출발점을 잡기가 어려웠다. Bertone까지 가는 방향을 잡느라 우왕자왕 하다가 지나가는 이탈리아인에게 물어 겨우 첫 출발점을 찾아 속도를 내어 걷기 시작했다. Bertone은 Courmayeur마을 뒷편에 있는 높은 언덕에 위치한 산장이었는데, 어제 이곳에서 잤어야 하는 곳이다. 올라가는 길이 숲길이라 나무밑을 지날때면 비를 피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않을때에는 비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비가 가끔 적게오기도 했으나 계속 일정량으로 떨어졌다. 게다가 바닥은 점점 젖어들어가 산길은 점점 진흙이 되어갔고 등산화에도 점점 물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놈의 등산화. 오기전 끝까지 하나 더 살까 말까 하다가 결국 안샀는데, 신발에 점차 물이들어가면서 샀으면 어떗을까 하는 후회가 자꾸 들었다. 이미 신은지 1년이나 된 45유로 짜리 등산화. 그동안 여기저기 같이 많이 다니면서 추억도 많고, 발에도 많이 길들은 소중한 친구지만 물에 약하다는 아주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날도 비가온지 1시간쯤 지났을때 슬슬 물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온도도 상당히 낮았다. 바람도 많이불어서 물에 젖은 손이 굉장히 시려워졌는데, 다행히 마라톤용 장갑을 챙겨갔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올라가는 길에 왠 프랑스인 10명정도가 전문 복장을 챙기고 등산을 하고 있었다. 가방도 아주가볍게 맨것이 짧은 코스를 가는 것으로 보였는데, 나한테 뭘그럽게 춥길래 판쵸우위를 입냐는 식으로, Vous avez fois ?라고 하며 지나갔다. 다들 반팔 반파지로 빠르게 올라가는 사람들이어서 그렇게 얘기한 것 같은데, 좀 기분이 나빴지만 나는 오래 걸어야 하고, 옷과 가방을 최대한 보호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싶었으나 이미 지나가버리고 난 뒤였다. 비를 원망하며 계속 걸으니 드디어 Bertone에 도착한다. 예상시간 2시간보다는 그래도 다소 빨리 도착하여 기분이 좋았으나, 계속되는 비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걱정하게 했다.
Bertone에 도착하자 마자 판쵸우위를 털고 휴식을 취함과 동시에 개인정비를 시작했다. 지도를 보며 방향을 잡고 있으니 왠 성별이 섞인 영국인 두명이 온다. 간단히 서로 산행에 대해 얘기하는데, 별로 나에대해 관심도 없어보이고, 친절하지도 않았다. 뭔가 콧대높은 녀석들.. 그리고 나서 다시 길을 출발하려는데 프랑스인 남자 학생으로 보이는 두명이 걸어온다.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었는데 상당히 얘기가 잘 통하는 녀석들이었다. 등산화가 이미 젖었냐고 물으니 자기들것도 젖었다며, 내 등산화가 싸구려라서 그런게 아니라 이정도 비라면 어떤 등산화여도 젖을것이라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이때 만난 프랑스인 녀석들은 나중에5일차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데 그때 다시 쓰도록 하자.
Refuge Bertone (1996m) – Refuge Bonnati (2056m)
다음 행선지는 Refuge Bonatti. 이름부터 뭔가 이탈리아 스러운 산장. 2시간 거리에 위치한 곳이었다. 어느정도 정비를 마친 뒤, 다시 걸음을 시작했다. Bertone이 제일 높은 곳인줄 알았는데 어느정도 언덕을 올라가고 또 올라간 뒤 평지길이 시작됬다. 평지라기보단 오르막 내리막이 섞인 길이었는데, 내리막을 내려갈때면 비가 쌓인 진흙들로 인하여 상당히 곤란해졌다. 자칫 잘못 디디면 좌측 절벽으로 떨어질 수 가 있었고, 또 자칫 잘못디디면 신발에 물이 가득찰 수 있었다.
가는길에 왠 짐을 가득실은 당나귀 세마리와 같이 걷는 일행이 있었다. 어쩐지 길에 싼지 얼마 안돼보이는 똥들이 보였는데, 이놈들 똥이었다. 이미 신발에 물이 들어가는 중이어서 자칫 잘못하여 똥을 밟으면 발로 그대로 스며드는 것이기 때문에 더 주의할수밖에 없었다. 일행은 약 15명쯤 되 보였는데, Tour du mont blanc sans sac 프로그램을 하는 것 같았다. 보통은 가방을 무겁게 안매는 것으로 알고있었는데 생각보다들 무겁게 가방을 메고있었다. 오르막길을 오를때면 당나귀들이 오르기 힘들어 고생하는 것이 안쓰러웠는데, 게다가 비까지 잔뜩오고 짐도 싫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불쌍한놈들. 하지만 동정심을 느끼기보다는 똥을 싸질러놓는 저놈들이 미워보였다. Pardon을 반복하며 일행들을 앞서고 계속 열심히 걸었다. 비를 뚫고 가다보니 어느새 비가 멈췄다. 이제 비가 안오는 줄 알고 판쵸우의를 벗고 계속 걸었는데, 이때가 이날 하루 일정중 비가 안온 유일한 시간이었다.
드디어 카메라를 꺼낼수 있겠구나 싶어 기념사진을 몇장 찍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걸은지 10분이 안되어 다시 비가 우수수 오기 시작하여 다시 판쵸우의를 썼는데, 이렇게 비가 미울 수가 없었다. 열심히 비사이를 걸으니 드디어 Bonatti 산장에 도착한다.
시간은 12시 20분정도. 아주 압박을 줄정도의 시간부족은 아니였으나, 비때문에 걸음속도가늦어져 생각보다 일정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비가 잠깐 멈춘 이후로 이전보다 더 많은 비가 쏟아져 이제는 발 전체에 물이 가득차서 걸을때마다 신발에서 뿌직뿌직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판쵸우의의 방수력도 이제 다하여 조금씩 비가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장갑은 물에 젖어 불어있었고, 판쵸우의에 가려지지 않는 바지의 하단 부위는 이미 물이 가득차 노란색이 아닌 황토색이 되어 있었다. 모든것이 축축하고 비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최악의 상황.. 게다가 몸은 체온이 많이 떨어져 쉬지 않고 걷거나 혹은 아예 천천히 쉬면서 체온을 올려야 했다. 만약 체온을 올리지 않는 상태에서 쉰다면 걸음을 멈춘 몸의 체온이 급격히 떨어져 더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다. 그래서 빠르게 결정한 것이 일단 Bonatti 산장에 들어가서 커피한잔과 간단한 밥을 먹으며 재정비 하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빠르게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 샌달로 갈아신었다. 그리고 판쵸우의, 장갑, 바람막이를 벗어 물을 털고 널어놓았다. 마치 자동차 레이스 경기에서 자동차들이 중간중간 멈추어 타이어를 바꾸는 것과 같이, 나도 엄청난 속도로 모든 일을 일사천리에 마치고 산장안으로 들어갔다. 산장에 들어가 일단 커피를 한잔 마시고 밥을 시켰다. 식사는 11유로에 스프, 치즈, 빵을 준다고 하여 흔쾌히 시켰더니만, 감옥 죄수들이 먹는 것과 같은 밥이 나왔다.
따뜻한 장소에서 스프를 마신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행복한 일이었지만, 밥은 정말 만족스럽지 않았다. 도데체 뭘 넣었는지 모르는 까만색 콩스프, 그리고 과자처럼 생긴 구운 빵. 그리고 냉장고에 오래 보관된것 같은 냄새가 나는 맛없는 얇은 치즈 3조각. 정말 맛이 없었지만, 몸을 녺이고 힘을 준다는 의미에서 감사히 먹었다. 특히 스프는 지금주면 안먹을 맛이지만 그 뱃속으로 들어가는 따스함이 너무나 좋아서 금방 다 먹어 버렸다. 시간은 벌써 13시가 다 되어가고 빨리 준비하고 출발해야했다. 오후에는 고도가 낮은 1600m정도 높이에 위치한 마을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상당히 높이가 있는 2537mm높이의 Grand Col de Ferret 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약 18시에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했을때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다만 비가 좀 멈추어 몸도 말리고, 속도가 더 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Refuge Bonatti – Frebouze (1600m)
몸을 다 식히고 다시 엄청난 비가 내리는 밖으로 나가는 것은 이번 Tour du mont blanc 중 가장 어려운 일로 기억된다.. 이미 비는 오전보다 더많이 내리고 있었다. 모자를 안쓰면 비가 너무많이와 눈에 비가 맺혀 전방이 안보일 정도였다. 이미 산장의 사람들은 코스를 포기하고 쉬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어제 이미 실패한 것처럼 다시 오늘 일정을 노칠수는 없었기에 이를 악물고 나갔다. 이때 다시 신발끈을 동여매고 나간 내자신이 너무 자랑스럽다. 특히 다 마른 뽀송뽀송한 발을 다시 흙탕물과 비로 젖은 등산화와 양말에 집어넣을때는 나도모르게 으 ! 라는 신음소리가 나왔다. 꿀맛같은 휴식을 취하고 전쟁터로 다시나가는 병사의 마음이 이럴까. 아니 마치 100일 휴가를 마치고 다시 부대로 복귀하는 이등병의 마음.. 옛날 생각나네..ㅋㅋ 내가 막 나가려는 사이 스페인 남자 두명이 들어와서 마찬가지로 식사를 했는데 인사만 하고 자세한 얘기는 서로 안했으나, 이 두명도 인연이 되어 나중에 계속 만나게 된다.
다시 걸을 때에는 비가 너무많이와서 속도가 굉장히 느려졌다. 바닥은 이미 완전 진흙이 되어있었고, 한걸음 한걸음 조심해서 걸어야 했다. 게다가 이제는 아래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기 때문에 내르막이 많아 더욱 조심해야 했다. 중간에 한번 길을 잃어 해매는 해프닝 등을 겪고 아래 마을로 내려갔다. 내리막은 항상 고통스럽다. 무릎도, 발목도. 몸에 상당한 충격을 주는 일이다. 오르막은 체력과 근력을 요구한다면, 내리막은 충격을 주므로 무릎, 발목의 내구력을 요구한다. 부랴부랴 빗길을 끄집고 내려가니 드디어 아래 마을에 도착한다. 사실 마을이라고 할수 없고, 그냥 강옆에 몇몇 집들이 모인 곳이다. 이제는 비가 너무많이 와서 판쵸우의도 아예 다 젖어버렸다. 물론 그래도 아직까지 약간의 방수기능이 남아있어 비가 직접적으로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으나, 지속적으로 안으로 스며들었는데 가방의 표면도 많이 젖기 시작했다. 게다가 바지는 젖고 젖어 이제는 나의 중요한 그곳까지 비가 노크하는 상황이 되었다. 속옷은 끊임없이 저항했지만, 결국 모두 젖어버리고 말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몸을 보호하는 모든 장비가 젖었다. 장갑은 살짝만 눌러도 물이 짜질 정도로 불어있었다. 가장 나를 절망시킨 것은 비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다는것, 그리고 바람이 점점 강해진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마을에 도착했을때 이미 시간은 15시가 되었다.
마을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비때문에 이미 일정에서 다소 쳐져있었고, 게다가 잠깐 나무밑에서 휴식을 하고싶어도, 걸음을 멈추면 체온이 떨어져 감기나 더큰 신체적 고통이 발생할 수 있었으므로 휴식 없이 계속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비와 바람은 더 강해지고 모든 장비는 젖고, 체온은 떨어진 최악의 상황이었다. 게다가 시간은 15시가 넘어 점점 기온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목표지점인 스위스에 위치한 Refuge Elena는 앞으로 약 3시간이 남았다. 시간상으로는 18시에 도착하면 큰 문제 없이 식사도 가능하니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걸음을 계속했다. 가는길에 Refuge Elena부터 지나야 하는데, Refuge Elena 가 생각보다 높은, 약 2062m에 위치하여있기 때문에 가는 길이 상당히 힘들었다. 이미 비때문에 몸이 많이 젖고, 체온도 떨어진 상태에서 역풍이 불어서 걸음은 점점 무거워지고, 게다가 중간중간 있는 하천들이 비로인해 불어나 이를 건너는 일이 굉장히 어려웠다. 이미 징검다리는 물에 다 잠긴 상태여서 하천에 발을 집어넣고 걸어야 하는데, 자칫 몸이 휩쓸려 버리면 그대로 아래로 추락사.. 오르막을 걸으면 걸을수록 체온이 떨어지며 점점 고통스러워졌다. 이때가 이번 종주중 첫날 길을잃었을때와 함께 가장 힘든 순간이 아닌가 싶다. 체온과 기온이 모두하강하는 상태에서 계속되는 비와 바람. 이미 모두 젖어버린 가방과 내 몸.. 최악의 상황. 더이상 행군을 강행할 수 없었고 Elena 산장에 방이 있기를 기도하며 일단 Elena에서 자기로 한다. 비를 뚫고 뚫고 정신력으로 걸었다. 나를 채찍질하고 채찍질하며 걸으니 드디어 16시가 조금 넘어 Elena 산장에 도착한다. 다행히 방이있어 Domotory로 방을 잡고 일단 씻기부터 시작했다. 다행히 이미 사람들이 많이 씼었거나,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샤워실에 사람이 없었고 조용히 즐겁게 따뜻한 물로 씻을 수 있었다. 게다가 전기코드 자리에 사람도 없어서 카메라 및 핸드폰을 여유있게 충전할 수 있었다. 호텔이 아닌 이탈리아 산장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사람들이 그닥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이 비가 오는 상황에서 Elena 산장은 진짜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게다가 내 자리 바로 옆에 전자히터기가 있고, 샤워실의 따뜻한 물도 아주 잘 나오니 더이상 불만할 것도 없었다. (화장실 변기가 쪼그려 앉아 쌓야 하는 불편함은 제외 !)
오늘 입은 모든 장비는 비누를 사용하여 모두 세탁했다. 게다가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빨리 이전에 입었던 속옷 및 양말, 티셔츠를 세탁했다. 신발은 신문지를 끼워 말려놓았는데, 이건 그냥 놓는다고 마를 정도로 젖은 게 아니였다. 무언가 특별한 대첵이 필요한데, 내 자리옆에 있는 히터에 내일 아침 몰래 말리기로 계획하고 일단 그냥 놔두었다. 샤워와 세탁을 모두 마치니 몸이 개운하다. 잠깐 비를 구경하러 밖에 나가니 언빌리버블 ! 비가 멈추어 있었다 ! 해가 뜬 정도는 아니었으나 이미 비가 멈추었고, 바람은 여전히 많이 불고 있었다. 원래 목표였던 Refuge Peule까지 계속 걸었어야 하나 하는 아쉬움이 좀 들었지만, 신체의 체온이 상당히 많이 떨어져 있었기에 위험을 감수 하지 않은 것은 참 잘한 선택이었다고 나를 위안했다. 지금생각해도 그때 만약 계속 걸었으면, 자칫 생명의 위험도 오지 않았을까 감히 생각해본다. 외부 입구에 온도계가 있어 눈금을 보니 8도가 조금 안된다. 바람까지 부니 체감온도는 거의 영하까지 가지 않았나 싶다.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데 당나귀를 데리고 걷던 그룹이 도착한다. 다들 짐을 풀고 샤워를 하러 가는데 당나귀들은 산장밖에 그냥 묶어놓는다. 딱히 당나귀 주차장이 있는것도 아니고.. 뭐 당연한 것이지만, 이 추위에 당나귀들을 그냥 밖에 세워놓으려니 왠지모를 동정심이 든다. 하루종일 고생한 놈들인데.. 길거리에 똥싸지른것은 맘에 안들었지만 한번 쓰다듬어 주고 들어왔다.
방에 들어오니 왠 서양아줌마가 내자리 옆 히터기에서 열심히 옷을 말리고 있다. 영어로 방해되지 않냐고 물어보는 것을 보니 유럽국가중 한 국가에서 온것 같은데, 서로 힘든상황이니 전혀 문제안되니 하고싶은대로 하라고 답했다. 그러고보니 내 빨래들은 건조장에 놓긴 했으나 워낙 건조장에 빨래들이 많아 습도가 높아 전혀 마를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건조물 몇개를 가져와 아줌마와 같이 건조시키기 시작했다. 히터기의 성능이 매우 좋아 빨래들이 금방금방 말랐고 밥먹기 전까지 속옷 하나와 양말 한쌍정도는 완전건조가 됬던걸로 기억한다. 식사하러 갈떄에는 스페인아줌마는 자기것을 다 말리고 뺐고, 내것과 다른 몇몇 프랑스인들의 빨래들이 널렸다.
19시가 되어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가니 약 40명정도 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B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기억이 안난다) 프랑스인 부부와 함께 셋이서 테이블에서 식사하게 되었는데(대부분 산장에서는 자리를 사전에 지정해준다) 이분들도 Tour du mont blanc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시간과 체력이 부족하여 전체는 아니고 부분 부분 하고 중간에 버스를 타는 식으로 진행하고 계셨다. 사실 사람들과 얘기를 통해 안 것은Tour du mont blanc 코스의 등산객중 약 80%는 버스를 중간중간 섞으며 혹은 부분만 한다는 것이다. Tour du mont blanc 전체를 클래식으로 교통수단 없이 진행하는 등산객은 대부분 나처럼 젋거나 ,혹은 산악경험이 많은 사람들 이라고 덧붙였다. 다음번에는 나도 여자친구나 가족과 함께 부분부분 하는 코스로 다시 와도 재밌을것 같다. 부부는 프랑스 북서쪽 지방에서 오신 분들인데, 평소에 산악을 굉장히 좋아하시는 분들이다. 이미 자녀들은 내나이가 되어 모두 출가를 했는데, 나를보고 아들같다고 좋아하셨다. 이렇게 나이가 드셔서도 산악과 여행을 즐기는 것은 진짜 멋진 일인것 같다. 음식은 이탈리아답게 전채로 스파게티가 나왔고 본식은 닭가슴살 스테이크, 후식으로는 케이크 및 과일이 나왔다.
산장에서 자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아주 잘 먹는다 »는 것이다. 진짜 배불리먹을 수 있고 음식의 질도 굉장히 좋다. 그리고 처음 만나지만 « 산 »을 통해 묶인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서로의 마음도 금방 열리고 밥맛도 더욱 좋아진다. 아마 Tour du mont blanc중 가장 많이 웃고 즐겁게 얘기하는 순간은 이런 꿀맛같은 식사와 휴식을 함께하는 저녁식사 시간이었던것 같다.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다양한 인생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산에 대한 얘기. 짧은 시간이라 매우 깊은 대화는 나눌 수 없으나 그 짧은 대화에서 서로를 산을 매개체로 하여 느끼고 통하는 그 시간이 나에게는 아주 소중한 시간 이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일정을 따라가는데 실패했지만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오늘은 비로 인해 시간이 밀림에도 꾸준히 걸어 다음 산장까지 갈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번 내가 자랑스러웠고, 게다가 이 빗속에 9시간이나 걸어준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고생한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보상이란 그저 따뜻한 산장속에서 자는일. 자기전까지 열심히 여자친구 편지를 읽고, 내일을 계획했다. 내일은 힘든 산을 넘는일은 많이 없으나 굉장히 긴 지루한 평지를 오랫동안 걸어야 하는 코스이기 때문에 약간의 부담감이 있었다. 하지만 내일은 날씨가 좋다고 하니 기분좋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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